항목 ID | GC068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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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iln Site |
이칭/별칭 | 요지(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성국 |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에 질그릇이나 사기그릇,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터.
[개설]
가마는 흙으로 빚어 만든 토기, 자기, 옹기, 기와 등을 굽기 위해 땅을 파거나 지붕을 덮어씌워 만든 시설이며, 가마의 흔적이 남은 곳을 가마터라고 한다. 가마는 인간이 토기를 발명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이후 계속해서 확인된다. 토기와 자기, 기왓가마는 고온을 낼 수 있게 하려고 주로 산기슭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구축되었다.
가마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요건으로 재료, 연료, 물 등 원료의 조달이 쉬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판매를 위한 교통로, 시장과의 접근성, 기술 및 노동력 조달의 편리성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가마의 기본 구조는 불을 피우는 연소실, 그릇을 재워서 굽는 소성실, 연기가 나가는 배연부, 재를 버리는 회구부로 이루어졌다. 옹기와 자기 가마에는 소성실로 출입하기 위해 소성실의 한쪽에 여러 개의 측구를 만들었다.
청송 지역에서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터를 비롯하여 기왓가마와 옹기 가마 등 다양한 가마터 유적들이 남아 있다.
[청송 지역의 가마터]
현재 청송 지역에서 확인된 가마터는 대부분이 백자 가마터로, 기왓가마와 옹기 가마터보다 그 분포 비중이 높다. 백자 가마터에서 생산되었던 청송 백자는 단순히 고령토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도석(陶石)[도자기의 주원료가 되는 점토질, 규산질, 장석질 등의 광물들을 함유한 물질]을 빻아서 만든 특이한 백자로, 기벽(器壁)이 매우 얇고 가볍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기술력으로 조선시대에 경상북도의 동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백자로 인정받아 생산과 소비가 꾸준히 이어졌다.
백자 가마터는 지역별로 주왕산면 신점리와 내룡리, 부남면 화장리 중심으로 집중해서 분포되며, 현재까지 대략 42개소가 확인된다. 화장리 백자요지와 신점리 백자요지 등 신점리와 화장리 일대에 확인된 백자 가마터들은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연료 조달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곳에 정착하여 생산한 것이 아니고 옮겨 다니며 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상은 가마가 형성되는 요인 중 연료의 수급이 중요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기와 가마터는 현서면에 있는 갈천리 기와요지가 대표적이며, 옹기 가마터는 파천면 옹점리 옹기요지, 주왕산면 항리 옹기요지 등이 대표적이다. 갈천리 기와요지, 옹점리 옹기요지와 항리 옹기요지는 기와 조각, 가마 벽체 일부와 옹기 조각이 이 일대에 흩어져 있어 지표상으로 확인되었고, 수습된 유물로 보아 조성 시기는 조선시대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