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60
한자 白貞基
영어공식명칭 Baek Jeonggi
이칭/별칭 백구파(白鷗波),백구파(白九波)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백정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8년 - 백정기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한국 대표로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백정기 자유 혁명자 연맹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 백정기 흑색 공포단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백정기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백정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백정기 건국 훈장 독립장 추서
출생지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한국 대표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백정기(白貞基)[1896~1934]는 1919년 만주 펑톈[奉天]으로 망명하였고, 베이징[北京]으로 거처를 옮긴 후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여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한국 대표로 참여하였다. 1933년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주중 대사를 비롯한 요인들이 모이는 곳을 습격하려다 붙잡혀서 복역 중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백정기는 지금의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에서 태어났다. 백구파(白鷗波) 또는 백구파(白九波)로도 불렸다. 1919년 8월 인천에 있는 일본군의 기관을 파괴하려다 사전에 탄로되자 만주 펑톈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후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자 여러 차례 국내에 잠입하였는데 서울 중부경찰서에 구금된 적도 있다. 1922년 베이징으로 망명하고 국내외 동지들과 연락을 취하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는데, 이때 이회영(李會榮)·신채호(申采浩)의 영향으로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28년 9월 백정기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개최된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30년에는 북만주로 가서 한국 무정부주의자 연맹 동지들과 자유 혁명자 연맹(自由革命者聯盟)을 조직, 민중 훈련에 노력하였다. 1931년 11월 흑색 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여 일제에 대한 파괴 공작을 추진하였다.

1933년 3월 일본 주중 대사(日本駐中大使) 유길명(有吉明)이 상하이 홍커우[虹口]에 있는 육삼정(六三亭)에서 일본 정치인과 참모부원뿐 아니라 중국의 친일 정치인, 군인 등 100여 명을 초대해 연회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을 동시에 몰살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거사 전날 발각, 체포되었다. 백정기는 일본 장기(長岐)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34년 옥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부안군지』 (부안문화원, 2015)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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