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과 경춘가도의 성쇠를 함께한 가평의 교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620
한자 北漢江-京春街道-盛衰-加平-交通
영어공식명칭 Traffic between Gapyeong and the Bukhangang River and Seoul-Chuncheon National Highwa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승호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북한강 수운이 쇠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경춘가도경춘선의 육상 교통에 관한 이야기.

[개설]

가평군은 한반도의 중부 지방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북한강이 통과하는 곳이다. 북한강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양수리에서 남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을 이루며 서울을 지나 서해로 유입한다.

북한강을 따라 이동하던 수운은 과거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호수 문화권과 한강 하류의 서울 사이에서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던 중요한 동맥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북한강 수계에 청평댐을 막아 전력을 생산하여 서울에 공급하고자 1943년 가평군 청평면청평댐이 건설되면서 가평 지방을 통과하던 북한강 수운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강을 따라 이동하던 사람과 물자는 육상 교통로를 따라 움직이게 되었고, 그 결과 가평군의 서부에 자리한 청평면에서 가평읍을 지나는 도로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도로 교통로는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이어지는 경춘가도경춘선 철도가 대표적이다.

자동차가 보편화하면서 가평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경춘가도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었고 경춘가도는 가평군을 상징하는 도로가 되었지만, 서울양양고속도로의 개통 이후 경춘가도를 이용하는 자동차의 통행량이 줄어들었다.

[가평군을 가로지르는 북한강]

북한강은 군사분계선 이북의 강원도 회양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화천군과 춘천시를 지나 경기도 가평군으로 흘러온다. 북한강은 강원도 춘천의 서쪽에서 춘천 시내를 통과해 흐르는 소양강과 합류하며, 가평군에서는 가평천홍천강을 합류하여 청평호를 이루며, 청평댐을 지나 조종천을 끌어들인다.

북한강은 물길을 이용한 수운이라는 측면에서 북한강 본류의 유역과, 소양강 유역, 홍천강 유역을 포함한다. 소양강 유역은 북한강 본류의 유역과 교류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지만, 홍천강 유역은 춘천 방향으로 연결되는 육로 및 수로 모두 접근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평군의 청평을 지나 서울과 교류하는 것이 유리했다.

북한강의 총 유로 연장은 317㎞이고 선박의 항해가 가능한 가항 수로의 길이는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서부터 상류 방향으로 298.4㎞에 달한다. 한북정맥과 그로부터 뻗어나간 산줄기 사이에 형성된 좁고 긴 하곡을 따라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북한강이 흐르는 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한 편이지만, 최고 수위와 최저 수위의 차이가 크게는 15m에 이르러 수운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간도 있다. 가평 구간은 물길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거의 직선으로 이루어졌고 수량이 풍부하여 수심도 깊었지만, 가평과 청평의 일부 구간에서는 하상의 암반이 돌출되어 마치 작은 폭포를 연상케 하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강을 이용한 수운 교통의 발달]

북한강을 이용한 수운은 고려시대에 형성된 조운제의 실시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조선 말기까지 세곡미를 운반하는데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서북부의 양구, 인제, 화천, 홍천, 춘천의 세곡을 모아 북한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까지 운반했다.

17세기 이후에는 개인이 선박을 운영하는 사선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상업용 선박이 본격적으로 운행하기 시작했고, 강원 산간 지방의 넓은 목재 산지에서 출발하는 뗏목의 운행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북한강 상류에서 뗏목으로 엮여 내려온 나무는 대부분 소나무였다. 북한강의 수계에 포함된 하천 주변 지역은 임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에 남한강 수운에 비해 북한강 수운을 이동하는 물자가 더 많았다.

가평군에서는 가평천 주변의 산지와 조종천 주변에 목재 산지가 넓게 분포한다. 북한강 수운을 따라 서울로 이동한 물품에는 내륙 지방에서 생산한 목재, 곡물, 신탄이 주를 이루었으며, 북한강을 거슬러 내륙 지방으로 이동한 물품에는 서해에서 생산된 소금과 새우젓 등의 어물과 일용 잡화가 주요한 것이었다.

20세기에는 인천이나 마포를 경유하여 내륙 지방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도자기, 밀가루, 석유, 설탕 등의 물품이 주요 교역품으로 등장했다.

북한강 본류를 따라 강원 내륙 지방으로 이동하던 선박이 서울에서 강원도 화천까지 이동하는데 보통 20일 이상이 소요되었고, 가평을 지나 춘천까지는 5~7일이 소요되었다. 이들 선박이 운항하면서 정박하여 머물던 기항지는 여러 곳에 형성되었으며, 가평군에서는 가평읍청평면이 대표적인 기항지였다.

춘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데에는 보통 2일이 소요되었으므로, 가평군에서 서울까지의 물길도 이틀이면 충분했다. 북한강이 얼어붙는 겨울철 5개월간은 수운을 이용할 수 없었다.

[북한강 수운의 쇠퇴]

북한강 수운은 육상 교통로의 발달로 인해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1911년 한반도에 치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서울과 강원도 춘천을 잇는 경춘가도가 1911년 폭 2칸 넓이로 착공하여 1915년 5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양평을 거쳐 홍천과 인제로 이어지는 2등 도로도 개설되었다.

1917~1922년 사이에는 강원도 춘천과 원주를 잇는 도로, 강원도 춘천과 김화를 잇는 도로 등이 개통하면서 육로를 통한 교통이 기존 북한강 물길을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대신하게 되었다.

1939년 경춘철도주식회사는 서울에서 춘천 사이의 93.5㎞ 구간에 경춘철도를 개통하고 영업을 개시했다. 북한강 수운의 주요 기항지였던 청평, 가평, 춘천을 잇는 경춘철도는 북한강 수운의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철도는 대량으로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교통수단이므로, 북한강 수운을 통한 물자의 수송보다는 철도를 통한 수송이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경춘선 철도는 북한강 수운의 주요 기항지였던 가평군의 가평읍청평면을 통과하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북한강 수운을 쇠퇴시킨 결정적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에 화물 자동차와 철도가 등장하면서 호황을 누렸던 북한강 수운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강 수운은 경춘가도경춘선 철도가 가평군을 관통하여 운행했음에도 명맥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1943년 지금의 청평면설악면을 연결하는 구간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청평과 가평을 잇는 수운은 중단되었지만, 홍천에서 청평에 이르는 구간에서는 선박과 더불어 뗏목의 운행이 계속되었고, 소양강과 북한강 본류에서 뗏목 운송은 196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특히 가평 지방에서 벌목된 목재는 물길을 따라 청평까지 이동한 후 청평에서 철도를 이용해 서울까지 운반되었다.

[경춘가도의 개통]

지금의 경춘국도는 개통 초기 ‘경춘가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서울과 강원도 춘천을 잇는 경춘가도는 191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15년 5월에 2등 도로로 개통된 신작로이다. 당시 2등 도로는 도청 소재지를 연락하거나 도청 소재지에서 중요 지점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대상으로 부여된 등급이다.

본래 서울에서 도청 소재지를 연결하는 도로는 1등 도로로 구분했지만, 경춘국도는 2등 도로로 개통되었다. 경춘가도의 개통식은 1915년 5월 5일 강원도 춘천에서 거행되었다. 경춘가도는 서울에서 강원도 중부를 동서로 횡단하는 간선 도로로 계획되었음에도 등급이 낮았기에 1926년 강원도 춘천에서는 1등 도로로의 승격을 위한 진정을 올리기도 했다.

[경춘가도의 확장과 포장]

경춘가도는 1922년에 2차로 형태의 도로로 확장되었지만, 포장이 이루어진 시기는 1960년대 중반이다. 1960년대에 포장만 되었을 뿐 도로의 폭은 1920년대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의 보급이 보편화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량이 증가하면서 경춘가도의 준 고속화 공사가 실시되었다.

서울에 접한 경춘가도의 구간은 출퇴근 시간을 비롯하여, 휴일이 되면 나들이 차량의 증가로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이에 따라 1987년 남양주시에서 가평군 청평면에 이르는 구간이 왕복 4차로로 개통되었고, 청평면에서 가평읍 구간은 1989년에 왕복 4차로로 확장되었다.

이로써 가평군을 동서로 통과하는 경춘가도의 4차로 확포장 공사는 마무리되었다. 도로가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나들이를 마치고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가평읍 일대와 청평면 일대는 물론 경춘가도의 가평~청평 구간에서도 교통 체증이 반복되었다.

경춘가도가 개통하기 전 가평과 춘천을 잇는 자동차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춘천은 가평과 단절된 생활권을 형성했다. 북한강 물길을 따라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활발하지는 않았다.

경춘가도가 건설되면서 북한강을 건너는 교량이 부설되었고, 춘천은 가평과 동일한 생활권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가평군과 주변 지역 간의 연결 관계는 경춘가도의 개통으로 한층 개선되었으며, 가평군을 찾는 여행객의 규모가 커진 동시에 자동차의 통행량도 증가했다. 북한강 변을 끼고 달리는 경춘가도는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경춘가도의 통행량 감소]

경춘가도의 가평군 구간을 통과하는 자동차의 일일 평균 통행량이 감소한 것은 2009년에 개통한 서울양양고속도로와 관련이 있다. 경춘가도는 서울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도로로 개설되었고 가평군은 서울과 춘천 사이에 자리한 곳이므로, 자연스럽게 자동차 도로의 경유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개통된 경춘가도는 가평군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최근까지도 가평군 교통의 주요한 동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자동차 통행량은 서울에서 가평을 경유하여 춘천까지 이어지는 경춘가도의 기능을 약화시켰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서울에서 강원도 중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가 개설되었다.

고속도로는 서울과 춘천을 직접 연결하기에 ‘서울춘천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속도로는 가평군을 통과하지만 오래전에 개설된 경춘가도의 구간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 구간을 통과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가평군을 경유하는 경춘가도의 교통량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8년 기준으로 경춘가도청평면-가평읍 구간을 통행하는 일일 평균 교통량은 청평면 상천리에서 2만 9,123대, 가평읍 하색리 구간에서 2만 5,245대를 기록하였다. 가평군을 통과하는 청평면-가평읍 구간에서는 2만 6,124대가 통행하였다.

청평면-가평읍 구간의 1997년 일일 평균 통행량이 3만 2,570대에 달했고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년인 2008년에는 일일 평균 교통량이 3만 5,137대에 달했음을 고려하면, 경춘가도의 가평군 구간을 통과하는 교통량은 최근 들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복선 전철로 거듭난 경춘선]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 철도는 개통 당시 가평군에 3개의 정류장과 2개의 간이 정류장을 경유했다. 자동차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경춘선 철도는 가평에서 서울로 이동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통수단이었다.

경춘선 철도는 북한강 수운의 쇠퇴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으며, 경춘가도가 확장되고 포장이 마무리된 1960년대 이후에는 경춘가도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였다. 1980~90년대에는 경춘선을 타고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일대를 찾는 대학생들의 MT 행렬도 장관을 이루었다.

경춘선 철도는 2010년에 복선 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되었고 열차의 운행 빈도도 크게 늘었다.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전철의 운행은 가평군의 교통에도 새로운 변화를 유발했다.

교통 체증이 심한 경춘가도보다 길 막힐 걱정할 필요 없는 경춘선 전철을 이용하여 가평으로 나들이하는 승객이 증가하면서 경춘가도는 다시 한번 경춘선과 경쟁을 치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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