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묘의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590
한자 「龍墓의 由來」
영어공식명칭 A dragom of tomb Orig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성치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 「용묘의 유래」 『가평군지』에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9년 2월 2일 - 「용묘의 유래」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가평군민 신영범에 의해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용묘의 유래」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수록
관련 지명 유몽인 묘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갱골 지도보기
관련 지명 소목이골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갱골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유몽인|유몽인의 세 아들
모티프 유형 단맥 모티프|파가저택 모티프|변신 모티프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에 진동에 있는 용묘에 관한 설화.

[개설]

「용묘의 유래」 설화는 유몽인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묻힌 묘에 얽힌 유몽인의 후손과 용묘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용묘의 유래」 설화는 2009년 2월 2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노인회 지회장의 소개로 가평군민 신영범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용묘의 유래」 설화는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2006년 간행한 『가평군지』에 같은 내용의 설화가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진동에는 개암나무가 많아서 ‘개암골’, ‘갱골’ 혹은 개암 진 자를 써서 ‘진동’이라고 불렀다. 조선 정조 때 유명한 학자인 유몽인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정동에 묘를 썼는데 유몽인의 묘에서 용이 났다고 해서 ‘용묘’라 불린다.

유몽인은 죽임을 당하기 전, 자신의 묘를 진동에 써달라는 것과 세 아들에게 한꺼번에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세 아들은 유몽인의 유언을 잊고 과거에 응시하여 세 명 모두 급제를 하였다. 당시 한 가문에서 같은 날에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니 나라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유몽인에게 훌륭한 아들이 나온 것은 묘를 잘 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묘를 파보라고 하였다. 유몽인의 묘를 파니 그곳에서 용이 나왔다.

그리고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에는 ‘소목이[소맥이]’ 혹은 ‘쇠목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소목이 골짜기의 유래는 몇가지가 있는데 소의 모가지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고개라는 뜻과 대강간이 있던 곳이라 쇠를 먹는 골, 소를 기르던 골짜기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소목이는 용묘와 관련이 있는데, 유몽인의 묘에서 나온 용을 죽이려고 쇠를 녹여서 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현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진동에는 고려의 장수 이방실 장군의 묘도 있다.

[모티프 분석]

「용묘의 유래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무덤 속의 시신이 용이 되려다가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진동의 용묘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 연관성이 있다. 조선시대 당쟁에 의하여 유몽인유몽인의 아들과 함께 처형된 인물이다. 유몽인의 묘가 용묘라고 설정하고 나라의 관리들이 파헤쳐 쇳물을 부었다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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