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507
한자 祈雨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가뭄이 심할 때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던 제사.

[개설]

농업에서는 적당한 때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가뭄이 심하면 농민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기우제를 지냈으며 이러한 민중들의 숙원을 알고 있는 국가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터는 각 지역마다 기록에 남아있는데 가평 지역에서도 3곳이 전해지고 있다. 그 밖에도 마을마다 비가 오지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농민들은 기우제를 지낸다. 남성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여성들이 모여서 집단 행동을 통해 하늘이 비를 내려주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국가에서도 기우제를 지냈다. 화악산에서는 중종 22년에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이후에도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냈다.

[신당/신체의 형태]

화악산의 기우제터는 중중 22년의 기록을 보면 북면 물내리(勿乃里)에 있었다고 한다. 1842년 읍지에는 군내면 중산동의 용추(龍湫)에도 기우제를 지낸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설악면에서도 기우제터가 있었다. 양근에서 북으로 30리 되는 곳에 있는 익고지용추(益高地龍湫)도 중요한 기우제터였다. 이곳은 가일천이 발원하여 설악면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만큼 설악면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장소였다. 조선시대 가평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은 그밖에도 마을마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차]

기우제를 지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국가나 지역의 남성들이 모여서 지내는 제례는 유교식 제례에 준한다고 볼 수 있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주술적 방식을 취한다. 개울에 가서 부녀자들이 체로 물을 까불거나 하는 등 유감 주술 행위를 하기도 한다.

[현황]

가평 지역에서는 곳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화악산과 중산동의 용추, 설악면 등지에 기우제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기우제를 매우 중요한 행사로 시행하였으며 지금도 가뭄이 심하면 간혹 기우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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