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리 김춘수 가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451
한자 道大里 - 家屋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인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도대리 김춘수 가옥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 지도보기
성격 고가

[정의]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에 있는 김춘수의 옛 가옥.

[변천]

양짓말에 있는 김춘수[가명, 1938년 생, 남]·오정미[가명, 1940년 생, 여]의 집은 옛집 건물과 현재의 집 두 채로, 그 중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원래 있던 사랑채를 없애고 2004년 여름에 지은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옛집은 김춘수 씨가 18살 되던 때 지어졌다.

옛집에는 마굿간이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움막의 형태로 남아 있는것이 전에는 외양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지금은 차고로 바뀌었다. 소에게 여물을 주던 공간도 지금은 사라졌다. 현재는 옛집의 부엌과 연결된 뒤편에 창고를 마련하여 필요한 물품은 주로 그곳에 보관한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창고를 마당의 한켠에 시멘트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다.화장실은 옛집에서 마당 끝에 존재하던 것을 그대로 두고 새로 집을 지으면서 욕실과 함께 화장실을 만들었다. 예전에 존재하던 화장실은 거름을 위하여 그대로 두었다.

[형태]

김춘수·오정미의 옛집에서는 안방을 주로 손자와 할머니가 사용했고, 윗방은 그들 부부가 사용했다. 사랑방은 현재 가평읍에 살고 있는 시동생이 쓰던 방으로, 시동생이 나간 뒤에는 시어머니의 어머니가 와서 몇 년간 살게 되었다. 2004년 양옥으로 새로 지어진 집은 방이 3개로 안방은 부부가 사용하기로 했다. 방 하나는 시어머니가 사용하며, 다른 방은 대학을 다니는 둘째 아들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둘째 아들은 평소에 집에 없기 때문에 비어 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집에 오면 오정미는 ‘할머니방’에서 시어머니와 같이 잔다. 평소에도 오정미는 안방에서 자지 않고 ‘할머니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잔다. ‘아들방’ 역시 주말마다 오는 오정미의 딸 부부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큰아들이 집에 오는 경우 그들 식구에게 안방을 내어준다.

옛집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먼저 종이를 불쏘시개로 넣어서 태운 뒤, 나무를 반으로 잘라서 아궁이에 넣는다. 옛집의 부엌에는 솥이 세 개가 있는데, 가장 작은 솥은 밥을 하는 데 썼고, 중간 것은 빨래를 삶는 데 사용했다. 가장 큰 것은 두부를 만들거나 물을 데울 때 이외에는 쓰지 않았다. 2004년 10월 23일에 오정미는 천기저귀를 옛집의 부엌에서 삶고 있었다. 딸의 출산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2004년 12월 6일 출산예정] 예전에 썼던 기저귀를 삶아 아기가 쓸 기저귀를 소독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금 번잡하고 큰일은 아직도 옛집의 아궁이에 불을 때서 한다. 예를 들면 메주를 쑬 콩을 삶는다든가, 고추장을 쑨다든가하는 일은 주로 옛집의 부엌에서 한다. 새로 지은 집의 부엌은 ㄱ자형의 씽크대가 놓여 있다. 개수대 쪽으로 냉장고를 비치하고 가스렌지가 있는 쪽은 옛집과 연결되는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각종 식품 재료가 보관된 창고가 나온다.

장독대는 여전히 마당의 왼편 구석에 존재한다. 아직은 시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자식들이 필요로 하는 저장 음식은 대부분 오정미 집에서 가져간다. 장독대에는 가장 큰 간장 항아리와 된장 단지, 그리고 고추장 단지가 있다. 된장은 한해를 묵혀 쓰는 것이 맛이 좋아서 두 개를 놓고 쓴다. 올해에 담근 된장은 오른편에, 작년에 담근 된장 항아리는 왼편에 놓았다. 이년째가 되면 한 해 묵은 된장을 새 된장과 버무려 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된장이 남는 경우는 아직까지 한 번 정도 밖에 없었다.

식사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놓인 교자상에서 해결한다. 따로 입식 식탁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교자상을 놓고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본인은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 편하지만 손자들은 교자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불편한 듯하다. 그러나 당장에 구입할 생각은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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