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193
한자 親愛院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시대 현대
집필자 박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52년연표보기 - 친애원 설립
최초 설립지 친애원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지도보기
성격 단체

[정의]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었던 한국전쟁 중에 세워진 고아원.

[개설]

친애원은 1952년 한국전쟁 중에 미군 제2사단장 플라이 소장이 당시 옹기 공장이 있던 자리에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하여 운영하던 고아원이다. 윤을수 신부가 운영을 맡아 ‘친애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친애원의 설립자 윤을수 신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식 성명[창씨개명] 강요를 거부하며 미국으로 떠났고, 1948년 귀국하여 성신대학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현실이 더 시급한 일임을 느끼고 대학장을 사임한다. 윤을수 신부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1군단 군종 사제로 복무하였고, 더욱 효과적인 사회사업을 위해 ‘골롬바사’라는 사회사업 단체를 만들고, 경기도 소사에 어린이집과 서울시 부암동 석파정에 골롬바 어린이집을 시작하였다. 1952년 미군들이 운영하던 청평의 고아원을 미군 제2사단장 플라이 소장이 윤을수 신부가 운영하는 소사와 부암동의 고아원 소문을 듣고, 윤을수 신부에게 운영을 부탁하였다. 윤을수 신부는 이 고아원을 고아원이라 부르지 않고, “너희는 고아가 아니고 하느님의 자식이다. 어머니는 성모님, 아버지는 하느님으로 여기고 좌절하거나 우울해하지 말라”며 ‘친애원’ 혹은 ‘어린이집’이라 불렀다.

[건립 경위]

친애원한국전쟁이라는 당시 극도로 어려운 현실에서 다급한 상황에 부닥친 전쟁고아들 돌보기 위해 설립하였다. 윤을수 신부는 이 고아들이 고아로서 생명만 유지하기 위해 돌본 것이 아니라 미래 한국의 건강한 성인이 되기를 바라며 돌보았다.

[변천]

친애원은 1952년 미군이 옹기 공장 자리에 전쟁고아들을 위해 설립하였으며, 윤을수 신부가 운영을 맡으면서 청평의 신자들과 같이 미사를 드렸다. 1953년 친애원을 운영하던 청평 공소는 양평 본당에서 분리되어 청평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70년 3월 화재로 250평의 친애원 건물이 전소되었다. 청평 본당 3대 주임인 봉희만 신부는 친애원 건축을 위해 노력하고 1970년 9월 1일 기공식을 하였으나, 공사비 문제로 1971년 12월 공사가 중단되고 결국 정리되었다.

[참고문헌]
  • 청평성당(http://cafe.daum.net/ccpchurch)
  • 가톨릭 평화신문 한국교회 사제 열전 윤을수 신부(https://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324155&path=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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