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792
한자 河相泰
영어공식명칭 Ha Sangtae
이칭/별칭 하상태(河相兌),하상태(河尙泰),하성태(河聖泰),치영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성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8년 11월 23일연표보기 - 하상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하상태 가평군수 횡포에 봉기 도모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하상태 대한제국 진위대 하사로 근무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07년 - 정미칠조약 체결
활동 시기/일시 1908년 5월 - 하상태 경기도 광수련 및 동두천에서 의병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9년 6월 9일연표보기 - 하상태 사망
출생지 하상태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495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하상태 이주지 - 경기도 양주군 화조면 묵현 457
활동지 하상태 활동지 - 경기도 가평군|장단군|강화군
묘소 하상태 묘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면 묵현리
성격 의병장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진위대 하사|의병장

[정의]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하상태(河相泰)[1868~1909]의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자는 치영이다. 하상태(河相兌), 하상태(河尙泰), 하성태(河聖泰)라고도 불리었다. 하상태의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참판 하상문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하수홍(河受弘)이다. 1868년 11월 23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495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06년 가평군수가 백성들의 삶이 매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가평군내의 환곡 800여석을 몰수하여 사복을 채우려 하자 하상태는 류인홍(柳寅弘)과 함께 봉기를 도모하였다. 가평군수는 이 소식을 듣고 환곡 몰수를 자진 철회하도록 하였다.

하상태는 진위대(鎭衛隊) 하사(下士)로 근무했는데, 1907년 7월 30일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당하자 경기도 장단(長端)에서 의병을 일으켜 강화(江華)의 연기우(延基羽) 의병장과 힘을 합쳐 고랑포(高浪浦) 일대에서 일본군 진영을 교란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1908년 5월 경기도 광수련에서 연기우와 함께 의병 300명을 이끌고 동두천(東豆川) 방면으로 진군하여 일본군의 병참소(兵站所)를 습격하였다.

1909년 4월 9일 하상태는 경기도 장단군에 있던 일본군 분파소(分派所) 삭령수비대(朔寧守備隊) 소속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교전 중에 체포되었으며, 연행 중에 혀를 깨물어 자결해 순국(殉國)하였다.

[묘소]

하상태의 묘는 남양주군 화도면 묵현리에 있다. 묘소에 하상태의 전공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하상태는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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