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67
한자 姜允熙
영어공식명칭 Gang Yunhui
이칭/별칭 선집,청은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성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8년 11월 11일연표보기 - 강윤희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9년 11월 30일연표보기 - 강윤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강윤희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출생지 강윤희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427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강윤희 거주지 -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내리
성격 의병장
성별
대표 경력 관동창의진 부장

[정의]

대한제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장.

[가계]

강윤희(姜允熙)[1868~1909]의 본관은 진주이며, 아버지는 강필형(姜苾馨)이다.

[활동 사항]

강윤희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김동필(金東弼)·경현수(慶賢洙) 등과 함께 조약에 협조한 을사오적의 처단과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각국의 공사들에게 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의병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기회를 모색하였다. 1906년 호남의 유행 기산도(奇山度)와 함께 을사오적의 처단을 도모하다 평북으로 옮겨 활동하던 중 민영환(閔泳煥)의 순국 소식을 듣고 『대한매일신보』에 「혈죽부(血竹賦)」라는 시를 지어 성토하였다. 1907년 10월 이인영(李麟榮) 의병장이 결성한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의 부장으로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이은찬(李殷瓚)·이구재(李九載) 등의 추대로 관동창의진을 결성한 이인영 의병장은 종래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의병진을 결집하여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의 의병진에 격문을 띄워 11월을 기해 경기도 양주에 집결하도록 하였다. 이어 전국의 대표적인 의병진을 묶어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를 결성하였다. 마침내 군사장 허위(許蔿)가 이끄는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공하여 서울 탈환을 위한 격전을 벌였으나 후속부대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하여 후퇴하게 되었다. 그 후 이인영 의병장이 붙잡혀 순국하자 강윤희는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양구군(楊口郡) 등지에서 부일배를 처단하고 일군과 교전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1909년 5월 일본군에 붙잡혀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에서 교수형을 받고, 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묘소]

강윤희의 묘소는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오리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강윤희는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