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시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57
한자 蔡時鏡
영어공식명칭 Chae Sikyeong
이칭/별칭 국명(國明),송곡(松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현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8년연표보기 - 채시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52년 - 채시경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69년 - 채시경, 미원서원에 대한 사액 청원
몰년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채시경 사망
출생지 채시경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채시경 묘 -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평강
대표 관직|경력 증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학자.

[가계]

채시경(蔡時鏡)[1618~1687]의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자는 국명(國明)이고, 호는 송곡(松谷)이다. 아버지는 통진현감(通津縣監) 채영후(蔡榮後)이고,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채시경은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에서 태어났다. 1652년(효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으며,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1669년(현종 10)에는 양근(陽根)[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지방의 유생을 대표하여 조광조(趙光祖)와 김식(金湜)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미원서원(迷源書院)에 사액을 청원하였고, 동시에 김육(金堉)을 숭상하는 은전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조광조의 사액 서원은 이미 너무 많았고, 김식의 경우는 사액 서원이 없었지만 사액 청원을 매번 들어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채시경의 청원은 예조에서 기각되었다. 죽은 뒤에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에 증직되었다.

[학문과 저술]

채시경이 1669년(현종 10)에 양근 지방의 유생을 대표하여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 『서원등록』 10월 22일 자에 실려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정신(先正臣) 조광조의 학문의 바름과 도덕의 성대함은 우리나라에서 수백 년 동안 있지 않았던 대현(大賢)으로, 공무(孔廡)에 배향하여야 그의 학문과 도덕이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습니다. 고(故) 대사성 김식은 기묘년(己卯年)의 현량과(賢良科)에 장원 급제하여 조광조와 더불어 발탁되고, 당시 이학(理學)의 종(宗)이 되었지만, 참소와 비방을 당하다가 충정(忠正)으로 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두 신하가 왕래하고 머물며 강습한 곳이 양근 지방에 있는데, 그 이름이 미원(迷原)입니다. 따라서 본군(本郡)의 선비들이 두 신하의 유풍(遺風)을 흠모하여 서원을 건립하고 함께 향사(享祀)하였습니다. 근래의 고 상신(相臣) 김육(金堉)은 바로 김식의 4대손이고, 또한 조광조의 외종손(外從孫)입니다. 그는 김식과 조광조 두 스승의 가문을 출입하며 독실하게 실천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미원과 멀지 않은 곳에 은거하였습니다. 성대(聖代)를 만나 중신이 되어서, 두 임금 시대의 훌륭한 신하가 되고, 또한 사당에 배향되었습니다. 그의 사적과 행실을 고찰하면 모두 사림(士林)들이 위패를 모셔 배향하는 것이 마땅하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려문을 세우고, 숭상하고 장려하는 은전(恩典)을 원합니다.”

[묘소]

채시경의 묘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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