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52
한자 鄭允誠
영어공식명칭 Cheong Yoonseong
이칭/별칭 치중(致中),백굴재(百掘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인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1년연표보기 - 정윤성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35년연표보기 - 정윤성 사망
묘소|단소 정윤성 묘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경주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가계]

정윤성(鄭允誠)[1751~1835]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자는 치중(致中)이고, 호는 백굴재(百掘齋)이다. 아버지는 정달영(鄭達榮)이고, 부인은 전주 류씨(全州 柳氏)이다.

[활동 사항]

정윤성이 10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누워있으면서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정윤성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는데, 마침 솔개 한 마리가 을 물고 내려와 닭장 앞에 놓고 갔다고 한다. 을 잡아 봉양하니 아버지의 병이 완쾌되었다고 하며, 이웃에서 ‘천생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정윤성의 후손인 정희규(鄭喜奎)가 쓴 「백굴제공 효행록(百掘齊公 孝行錄)」에는 다른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노루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마침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다 울타리에 놓고 갔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묘소를 지키며 3년간 시묘를 하였다.

[묘소]

정윤성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 있으며, 부인과 합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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