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73
한자 普愚
영어공식명칭 Bou
이칭/별칭 원증국사(圓證國師)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이현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01년 9월 21일연표보기 - 보우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314년 - 보우 회암사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327년 - 보우 화엄선에 합격
활동 시기/일시 1346년 - 보우 원나라 연경에서 『반야경』 강설
활동 시기/일시 1348년 - 보우 소설암에서 수행
활동 시기/일시 1356년 - 보우 왕사로 책봉
활동 시기/일시 1371년 - 보우 국사로 책봉
몰년 시기/일시 1382년 12월 23일연표보기 - 보우 사망
출생지 보우 출생지 - 충청남도 홍성군
학교|수학지 회암사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활동지 중흥사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서문길 393[북한동 259]
활동지 소설암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지도보기
활동지 보림사 -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로 224[봉덕리 45]
활동지 봉암사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원북리 485]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왕사

[정의]

고려 후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 있던 소설암에 거주한 승려.

[활동 사항]

보우(普愚)[1301~1382]는 1301년(충렬왕 27) 홍주(洪州)[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고, 1314년(충숙왕 1) 양주(楊州)[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양주시 일원] 회암사(檜巖寺)로 출가하여 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가지산(迦智山)에서 수행하였고, 1327년(충숙왕 14)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하였다. 1337년(충숙왕 복위 6)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圓覺經)』의 “모두 멸한 것을 부동이라 한다[一切盡滅名爲不動]”라는 구절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 무자화두(無字話頭)에 대해 연구하였고, 1341년(충혜왕 복위 2) 중흥사(重興寺)와 태고암(太古庵)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1346년(충목왕 2) 원나라 연경(燕京)으로 건너가 『반야경(般若經)』을 강설하였다. 이후 호주(湖州) 천호암(天湖庵)에서 석옥(石屋)[1272~1352]에게 임제종을 배우고 「태고암가(太古庵家)」의 발문과 가사(袈裟)를 받았다. 1348년(충목왕 4) 고려로 돌아와 현재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에 있던 소설암(小雪庵)에 머물렀다. 1356년(공민왕 5) 왕사로 책봉되었으며, 공민왕은 소설암이 있던 미원장(迷原莊)을 미원현(迷原縣)으로 승격시켰다.

1363년(공민왕 12)부터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 머무르며 신돈(辛旽)[?~1371]을 경계하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368년(공민왕 17) 오히려 신돈에 의해 속리사(俗離寺)에 감금되기도 하였다. 신돈이 죽은 뒤 공민왕은 보우를 국사로 책봉하고 개성 영원사(瑩源寺)에 머물도록 청하였으나 거절하였다. 1371년(우왕 1) 왕명으로 영원사에 있다가 양산사(陽山寺), 즉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로 옮겼다. 1382년(우왕 8) 다시 소설암으로 와서 ‘인생은 물거품같이 허무하고 팔십여 년이 춘몽이다. 임종에 가서야 이제 가죽끈을 푸니 둥글고 붉은 해가 서산을 넘는구나[人生命若水疱空 八十餘年春夢中 臨終如今放皮袋 一輪紅日下西峰]’라는 게송을 남긴 뒤 입적하였다. 향년 81세, 법랍 69세였다.

[사상과 저술]

보우는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 시기에 불교 개혁을 이끌었다. 공민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묻자, 인자한 마음이 교화의 근본이자 다스림의 근원이니 빛을 돌이켜 마음을 비추어 보라고 하였고 폐단과 운수의 변화를 살피라고 하였다. 그 뒤 공민왕에게 건의하여 한양으로 천도하고 불교계를 재편하고자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저서로는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2권과 『태고유음(太古遺音)』 6책 등이 있으며, 『태고집(太古集)』에 법어와 시 등이 실렸다.

[상훈과 추모]

보우의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태고사 동쪽 봉우리에 사리탑을 세웠는데, 탑호는 ‘보월승공(寶月昇空)’이다. 사리탑과 함께 세워진 비문에 의하면 양산사와 사나사(舍那寺), 소설암 등에도 사리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고사 탑비는 이색(李穡)[1328~1396]이 찬하여 1385년 9월 11일에 세워졌고, 사나사 석종비는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찬하여 1386년 10월에 세워졌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