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008
한자 世居姓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혁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가평군 세거성씨 현황]

세거 성씨는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동족촌의 성씨를 의미한다. 각 지역의 유력한 성씨 현황은 조선 초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확인된다. 지방의 유력 집단을 알려주는 이 성씨 구분은 16세기에 들어와 같은 성씨 집단 내에서도 차이가 커지면서 그 의미를 잃어갔다. 17세기와 18세기의 변화상은 『여지도서』에서 그 일단을 볼 수 있고, 19세기는 전국 각지에서 간행된 읍지를 통해 구체적인 성씨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토착 성씨 집단이 16세기에 의미를 잃어갔던 것과는 달리 조선 후기에는 마을의 구성과 운영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전국 각 지역은 물론 가평군 관내에서도 곳곳에 유력한 세거성씨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이와 동시에 집단적으로 마을을 이루어 집성촌 또한 확대되었다. 이후 근현대 개발과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10여 개의 세거성씨를 제외하고는 크게 약화, 소멸되는 추세이다.

[15세기 세거성씨]

가평의 성씨와 인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세기에 만들어진 『세종실록지리지』[경기 양주도호부, 광주군]이다.

가평의 토성(土姓)[지배적 성씨]은 탁(卓)·간(簡), 망성(亡姓)[없어진 성씨]은 장(張), 속성(續姓)[추가 기록된 성씨]은 박(朴)이다. 조종현[현 상면·하면]의 토성은 현(玄)·호(胡)·이(李), 망성(亡姓)은 형(邢)·박(朴), 내성(來姓)[이주해 온 성씨]은 한(韓), 속성(續姓)은 김(金)이다. 미원[현 설악면]의 토성은 함(咸)·탁(卓)·부(傅)·경(耿), 망성(亡姓)은 경(敬)·이(李)·정(鄭)·박(朴), 미원장(迷原莊)의 속성은 함(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지리지 편찬 당시인 15세기 전후에 가평에는 탁·간·현·호·이씨가 토성으로 존재했고, 경·형·박씨가 망성, 한씨가 이주해온 성씨, 박·김·함씨가 당시 추가로 기록된 속성임을 알 수 있다.

가평 지역의 가장 오래된 세거성씨로는 인동 장씨(仁同張氏)를 꼽을 수 있다. 입향조인 장한신(張漢臣)은 관직에서 물러나고 1455년(세조 1) 가평읍 금대리에 정착하였다. 이후 차츰 집성촌을 이루면서 가평의 대표적인 세거성씨로 부각되었다. 2015년에 진행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가평군의 전체 인구 57,614명 중 성씨별 인구 순위는 김·이·박·최·정씨 다음으로 장씨가 1,922명으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16세기 세거성씨]

16세기의 가평군 성씨 현황은 『신증동국여지승람』[경기 가평현]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가평의 성씨는 장(張)·탁(卓)·간(簡)씨, 속성은 박(朴)씨이며, 현재의 상면·하면인 조종의 경우 현(玄)·호(胡)·이(李)·형(邢)씨, 박(朴)·김(金)·한(韓)씨는 내성이다.

앞 시기인 15세기 기록과 비교해보면 『세종실록지리지』에 망씨로 기록된 인동 장씨가 가장 먼저 기재되어 있다. 망성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15세기보다는 16세기에 와서 장씨가 우세해 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16세기 가평 지역의 성씨 현황은 15세기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장·탁·간·현·호·이·형·함씨가 토성으로 존재했고, 박·김·한씨가 내성, 박씨가 속성이었다.

16~17세기 가평 지역의 대표적인 세거성씨로 의령 남씨(宜寧南氏), 동래 정씨(東萊鄭氏), 평산 신씨(平山申氏), 수성 최씨(隋城崔氏) 등을 꼽을 수 있다. 의령 남씨남언경(南彦經)[1528~1594]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설악면 이천리방일리에 정착하여 유력한 세거성씨로 부각되었다. 동래 정씨는 하면 신상리[현 조종면 신상리]에 과은공 정상조(鄭象祖)가 입향하면서 세거가 시작되었다. 평산 신씨는 가평읍 이화리·달전리에 정착하였으며, 수성 최씨는 최운우(崔雲羽)가 북면에 낙향·정착하였다.

[18~19세기 세거성씨]

1760년대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가평의 성씨로 탁(卓)·장(張)씨만을 기재하고 있다. 한편 『성원록(姓源綠)』에는 18세기에 존재한 가평 서씨(加平徐氏) 가계의 일부를 볼 수 있다. 현재 가평을 본관으로 한 서씨는 찾을 수 없으며, 이들 성씨가 당시 가평에 살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19세기에는 『가평읍지』[1871년]의 ‘씨족’이란 항목에서 성씨를 살펴볼 수 있다. 조종상면과 하면의 연안 이씨(延安李氏), 조종상면의 창녕 성씨(昌寧成氏), 서면의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 북면군내면의 광산 정씨(光山鄭氏), 남면과 군내면의 평산 신씨(平山申씨), 남면의 인동 장씨(仁同張氏)가 있다. 이 기록은 이전과 달리 각 면의 유력한 씨족을 기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그 지역에서 반드시 다수를 차지하는 세거성씨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세기 이후 가평의 성씨와 집성촌을 검토하면 이 기록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언급된 가평의 성씨를 정리하면 전통시대 가평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요 성씨는 간(簡)·김(金)·남궁(南宮)·박(朴)·성(成)·신(申)·이(李)·장(張)·정(鄭)·탁(卓)·한(韓)·함(咸)·현(玄)·형(邢)·호(胡)씨 등이다.

[20세기 세거성씨]

각 성씨의 족보와 세보 등을 통해 가평 지역의 세거성씨는 대체로 17~19세기에 걸쳐 관내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인동 장씨·의령 남씨·동래 정씨·평산 신씨·수성 최씨 등을 제외한 읍면별 주요 세거성씨는 다음과 같다.

가평읍에는 창녕 조씨(昌寧曺氏)[복장리], 거창 신씨(居昌愼氏)[하색리], 안동 권씨(安東權氏)[읍내리], 한산 이씨(韓山李氏)[이화리], 진주 하씨(晋州河氏)[승안리] 등이 있다.

설악면에는 여양 진씨(驪陽陳氏)[이천리], 양주 조씨(楊州趙氏)[묵안리], 전주 이씨(全州李氏)[신천리], 경주 김씨(慶州金氏)[미사리], 우봉 이씨(牛峯李氏)[엄소리], 남양 제갈씨(南陽諸葛氏)[설곡리], 강릉 함씨(江陵咸氏)[송산리] 등이 있다.

청평면에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상천리],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하천리], 전의 이씨(全義李氏)[삼회리] 등이 있다.

상면에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덕현리], 진천 송씨(鎭川宋氏)[율길리], 청주 한씨(淸州韓氏)[행현리], 이천 서씨(利川徐氏)[봉수리] 등이 있다.

하면에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신상리], 연안 김씨(延安金氏)[신하리], 전주 이씨(全州李氏)[하판리] 등이 있다.

북면에는 경주 정씨(慶州鄭氏)[소법리] 등이 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가평군에는 127개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성씨 인구수로 따지면 김(金)·이(李)·박(朴)·최(崔)·정(鄭) 5개 성씨가 가장 많다. 이 점은 전국 성씨 관련 통계에 나타난 5개 성씨의 순위와 같다. 전국 통계상 대성(大姓)의 순위는 5개 성씨 다음으로 강(姜)·조(趙)·윤(尹)·장(張)·임(林)씨인데 반해, 가평에서는 장(張)·신(申)·조(趙)·윤(尹)·한(韓)씨로 집계되었다. 이 점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가평 지역 성씨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장씨의 경우 19세기 이전의 기록에서도 가평의 유력한 성씨로 나타난 점에서 20세기 이후에도 그 세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도시화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후 가평 지역 관내에서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성씨를 본관별로 정리해보면 김해 김씨, 경주 김씨, 전주 이씨, 경주 이씨, 밀양 박씨, 경주 최씨, 수성 최씨, 경주 정씨, 동래 정씨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평 지역의 세거성씨 현황으로 주목할 것은 인동 장씨, 평산 신씨, 한양 조씨, 양주 조씨, 풍양 조씨 등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성씨는 가평 지역 관내에 정착한 시점은 다르지만 전근대시기부터 집성촌을 형성, 유지해 왔고 현재까지도 가평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