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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591
이칭/별칭 소목이골,유몽인의 묘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1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가평군지』에 가평군민 김창훈에 의해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1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가평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가평의 사랑방 이야기』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9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가평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 「용묘의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유몽인 묘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갱골 지도보기
관련 지명 쇠목이골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갱골 지도보기
채록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단맥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유몽인|손자 삼형제
모티프 유형 단맥 모티프|파가저택 모티프|변신 모티프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유몽인의 묘에 관한 설화.

[개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1리 갱골에 있는 유몽인의 묘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유몽인이 죽기 전, 유몽인의 유언대로 손자들이 유몽인을 가평군 하색촌에 묻지만 손자들이 유언의 금기를 지키지 못해 외부 세력으로 인하여 유몽인의 묘소뿐만 아니라 유몽인의 가족까지 몰살되었다는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설화가 가장 먼저 실린 곳은 1991년에 발간한 『가평군지』이며 가평군민 김창훈이 구술한 자료로 보고되어 있다.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설화는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가평의 사랑방 이야기』에 약간 수정되어 수록되어 있고, 2006년에 발간된 『가평군지』에도 수록되었다. 이와 별도로 2004년 발간한 『경기도 민속지』-구비문학편과 『한국구비문학대계1-11』-경기도 가평군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유몽인은 죽기 전에 손자 삼형제에게 묻을 곳과 열심히 공부하되 한꺼번에 과거시험을 보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하던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제시한 금기를 잊고 한꺼번에 과거시험을 보아 장원급제를 하였다. 나라에서는 한번에 장원급제를 한 삼형제가 이상하여 조사를 한 결과, 삼형제가 역신인 유몽인의 손자들이란 것을 알고, 유몽인의 묘소를 파보니 유몽인의 시신이 용이 되어 일어나려고 하였다. 나라에서는 유몽인 묘소의 혈을 끊기 위하여 묘소에 쇳물을 붓고 유몽인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그때 쇳물을 부었던 곳을 쇠목이골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설화는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방외인적 삶을 살아간 유몽인의 산소와 관련된 설화이다. 「용이 되려다 실패한 시신」 설화는 우물명당의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다. 유몽인은 자신이 죽기 전에 반역의 인물이 될 것을 알고, 손자 삼형제에게 시신을 묻을 장소와 과거시험을 함께 보지 말도록 금기를 제시하며 유언하였다. 유몽인의 ‘과거시험을 함께 보지 말라’는 금기 모티프를 파괴한 손자들 때문에 명당인 유몽인의 묘소는 파괴되었다. 그래서 유몽인은 묘소의 혈이 끊기고 쇠물을 부어져 용이 되려고 일어섰다가 용이 되기를 실패하였다. 오히려 유몽인의 가족이 몰살을 당하고 만다는 금기파괴로 명당을 상실하고 용이 되지 못하였다는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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