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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505
한자 解産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의 출생의례 중 아이를 낳은 직후의 풍속.

[개설]

해산속은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한 직후에 행해지는 민속을 말한다. 아이를 낳게 되면 먼저 탯줄을 실로 묶은 후 자른다. 그리고 출산시에 생기는 각종 부산물을 치우고 산바라지, 산가의 표시, 산후 조리, 삼신상과 삼칠일을 치루고 육아로 들어가게 된다.

[연원 및 변천 ]

해산속은 아이를 낳은 직후 행해진 풍속으로 그 연원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이어져 왔을 것으로 보인다. 가평의 경우 가정에서 아이를 낳던 1980년대 이전만하더라도 집에서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였으나 그후로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 전통적인 해산속은 많이 사라졌다. 특히 금줄을 치고 삼신상을 차려놓고 탯줄을 묻는 것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례]

가평읍 복장리 이화영은 시댁에서 출산을 했다. 가족들은 산실을 꾸미고 군불을 넣어 방을 따뜻하게 하고 마을에서 경험이 많은 할머니에게 출산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처음에는 애가 잘 나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하룻밤 꼬박 고생을 하고서야 아이가 태어났다. 태반과 탯줄은 시아버지가 모아서 동네의 큰 시내에 가지고 가서 깨끗하게 씻은 후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태워서 묻었다. 이어서 시아버지와 남편은 금줄을 달아야 한다며 왼새끼에 고추, 숯, 소나무 가지를 끼워 대문에 걸었다. 솔가지는 신선한 것을 꽂으면 좋다고 하여 남편이 직접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를 구해왔다. 태어난 아이가 남자아이라 어른들이 기뻐하였다. 큰 일을 했다고 칭찬도 해주고 몸조리를 잘 해야 한다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애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삼신할머니의 덕이라며 삼신할머니에게 한 상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새로 밥을 지어 한 그릇 가득 푼 위에 생미역을 얹어 삼신상을 차렸다. 그것을 아기의 머리맡에 놓고서 비손을 했다. 삼신상은 3일 동안 아기의 머리맡에 계속 차렸는데 밥은 아침에 차려 놓았다가 저녁에 산모가 먹어야 한다고 해서 저녁이 되면 그것을 뜨거운 미역국에 말아 먹었다. 아기를 낳은 후 조금 있다가 시어머니와 동네 할머니가 아기를 목욕을 시킨 후 무명으로서 싸서 산모의 옆에 눕혔다. 그후 ‘해복간’이라고 하여 산후조리를 시어머니가 해주었다. 방에 열흘 정도 누워서 지냈는데 당시 변변치 않은 살림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쉰 것이다. 그 후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지었지만 밭이나 논에 나가서 일하는 것은 한동안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시누이가 대신 해주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호강이었다.

금대리 김순희의 경우에는 첫 아기는 밤새 진통을 하다가 아침 나절에 안방에서 낳았다. 이때는 안방 온돌이 좋다고 시어머니가 안방을 내주었다. 아침이고 누구를 깨울 수도 없어 바닥에 아무 것도 깔지 않은 채 고쟁이차림으로 엎드려서 아이를 낳았다. 태가 다음날이 되어서야 나왔기 때문에 아기의 탯줄도 태반이 나온 뒤 한꺼번에 집 마당에서 왕겻불을 피워 태웠다. 태운 가루는 따로 깨끗한 주머니에 담아 집의 외딴 곳에 매달아 두었다가 태단[태열]이 나면 발라 주었다. 태단은 땀띠처럼 몸에 돋는데 탯가루를 들기름에 개어 발라주면 바로 나았다. 태단은 5~6살 이후에는 생기지 않으므로 병치레가 없는 아이면 그 때쯤에 탯가루를 버렸다.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왼새끼에 고추 세 개, 숯 한 개, 솔가지 세 개를 꽂아 금줄을 만들어 대문에 쳤다. 아이를 낳은 지 3일 되는 날 아침, 쑥물로 아기와 함께 깨끗이 씻은 후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날 시어머니가 아기가 자는 방바닥에 두라고 ‘삼메그릇’을 준비해 주었다. 미역국 세 그릇과 새로 지은 밥 세 그릇을 차리고 삼신할머니에게 아들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미역국은 1주일간 먹었는데 삼일 째부터는 일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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