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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781
한자 崔基榮
영어공식명칭 Choe Gi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범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7월 10일연표보기 - 최기영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최기영 북면 만세시위 참여
출생지 최기영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최기영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 지도보기
활동지 최기영 활동지 - 경기도 가평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북면 만세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최기영(崔基榮)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1897년 7월 10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생 이규붕(李圭鵬)과 장남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최종화(崔宗和) 등과 뜻을 모아 3월 15일 가평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4일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와 함께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각 동리에 보내어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가평군 북면 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 만세시위에 함께 할 동지를 모았다. 최기영은 이에 찬동하여 조카 최건화(崔建和)과 함께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15일이 되자 이윤석정흥교 외에 장기영(張基英), 정성교(鄭聖敎), 이만석(李萬錫), 정재명(鄭在明) 등 19인이 중심이 되어 수백명의 주민들과 함께 북면사무소로 나아가 만세를 불렀다. 뒤이어 가평 읍내로 이동하여 가평군청, 면사무소, 천도교구실 및 보통학교 등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이윤석 등 주도인물을 체포하였고, 북면 주민들은 이들을 구하고자 이튿날 아침 목동리의 성황당에 모였다. 약 200여 명의 주민들은 헌병주재소를 향해 이동 중 당고개에서 헌병들과 조우, 헌병들이 총을 쏘며 해산하라고 명령하였음에도 죽기를 각오하며 이들과 충돌하였다. 이 일로 인해 최기영은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 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처분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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