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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22
한자 李元忠
영어공식명칭 Lee Wonchoong
이칭/별칭 백신(伯藎),잠옹(潛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0년연표보기 - 이원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3년 - 이원충, 인목왕후 폐모론에 반대하는 상소 올림
몰년 시기/일시 1646년연표보기 - 이원충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4년 - 이원충 경현단에 배향
거주|이주지 양근군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원충 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경현단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산70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전주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경현단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문신.

[가계]

이원충(李元忠)[1570~164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백신(伯藎)이고, 호는 잠옹(潛翁)이다.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誠寧大君)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덕흥군(德興君)이며, 할아버지는 행사직(行司直) 이희무(李羲武)이다. 아버지는 진용교위(進勇校尉) 이복록(李福祿)이고, 어머니는 풍양 조씨(豊壤 趙氏) 조경현(趙慶賢)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8월 11일에 태어났다. 부인은 풍양 조씨로, 이조판서에 추증된 조수원(趙守元)의 딸이다. 아들은 양주목사(楊州牧使) 이후양(李後陽)이다.

[활동 사항]

이원충은 광해군 때 인목왕후(仁穆王后)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한양의 4부 학당인 동학(東學)의 유생으로서 조경기(趙慶起)·홍철남(洪鐵男) 등과 함께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후 양근(楊根)으로 퇴거하였다가 인조반정 이후 육품직에 특수(特授)되었다. 그러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강학(講學)에 전념하였다. 자손에게 유교(遺敎)로 “조정의 직의 부름에 나아가지 말며 세상에서 나를 오로지 충의위(忠義衛) 석자로만 칭해지면 가하다.”고 하였다. 후손들이 유교를 어기지 못하여 묘의 상석에도 ‘충의위’ 세 글자만 새겼다. 1646년(인조 24) 6월 19일에 사망하였다.

[묘소]

이원충의 묘는 양근(楊根) 북면(北面) 능내(陵內) 산간곡(山間谷)에 있다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해당한다.

[상훈과 추모]

이원충은 1974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장석마을에 있는 경현단(景賢壇)에 배향되었다.

유중교(柳重敎)[1832~1893]가 익화(益化)[지금의 경기도 양평군]의 유명 산천과 인물들을 추모하며 지은 시 9수가 『성재집(省齋集)』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원충에 대해 추모한 시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폐옥잠강안(弊屋潛江岸)[잠강 기슭 낡은 집]

고괴춘색심(古槐春色深)[오랜 회화나무는 봄빛이 깊도다]

이공상세변(李公傷世變)[이공께서는 세상 변고 슬퍼하시고]

혜대와호음(蕙帶臥湖陰)[난초 띠 매고 호수 남쪽에 은거하셨네]

운검풍상름(雲劍風霜凜)[운검에는 풍상이 늠름하였고]

원소세월침(原騷歲月侵)[원소에는 세월이 스미었다]

요장환선화(聊將紈扇畫)[잠시 비단 그림 부채를 들고서]

금고조단심(今古照丹心)[예나 지금의 단심을 비추어 본다]

시 말미에 “잠강(潛江)[가평군 설악면 소재]에는 이원충의 유적이 있다. 이공은 바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먼 후손이다. 광해군 조정에서 변란이 있을 때 피눈물을 흘리면서 임금에게 글을 올렸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이 마을로 돌아와 숨어 살았다. 자호를 잠옹이라고 하였다.”라고 주석을 달아 놓았다. 효령대군[태종의 둘째 아들]의 먼 후손이라는 것은 성녕대군 후손의 오기인 것 같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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