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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78
한자 信眉
영어공식명칭 Shinmi
이칭/별칭 혜각존자(慧覺尊者),김수성(金守省)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창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58년 - 신미 해인사 대장경 간행 감독
활동 시기/일시 1464년 - 신미 속리산 복천사에서 대설법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464년 - 신미 상원사 중창 건의
학교|수학지 법주사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사내리 209]
활동지 현등사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34[운악리 산163]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선교도총섭

[정의]

경기도 가평군 현등사에 거주하였던 조선 전기 승려.

[개설]

신미(信眉)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본명은 김수성(金守省)이며, 본관은 영동(永同)이다. 호는 혜각존자(慧覺尊者)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길원(金吉元), 할아버지는 김종경(金宗敬), 아버지는 전사시(典祀寺) 소윤(少尹) 김훈(金訓)이다. 어머니는 박익림(朴益林)의 딸이다. 동생은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호조 판서를 역임한 김수온(金守溫)이다.

[활동 사항]

신미는 세종과 문종, 세조의 신임을 받은 선승(禪僧)이다. 법주사(法住寺)에 출가한 신미는 세종 말년부터 불사(佛事) 중흥을 주도하였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昭憲王后)가 죽자 세종은 내원당(內願堂)을 궁 안에 짓고 불교에 심취하였다. 세종은 불교 관련 일들을 신미에게 자문 받았고, 몸이 아플 때 침실에까지 불러들일 정도로 신임하였다. 문종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종은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미를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하였다. 또한 신미는 세종이 존중하던 승려이고 현등사신미가 거주하는 절이라는 이유로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있더라도 조사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세조 때는 왕사(王師)와 같은 역할을 할 정도로 중용하였는데, 신미에게 ‘혜각존자’라는 호를 내린 것도 세조이다. 세조는 수양대군(首陽大君) 시절부터 신미를 경애하였고, 왕이 되자 불교의 중흥을 주관케 하였다. 신미는 1458년(세조 4) 해인사 대장경 간행을 감독하였고, 1461년(세조 7)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세워 불전(佛典)을 간행할 때도 주관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에 갔을 때는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1464년(세조 10) 신미가 상원사 중창을 건의하자 세조는 물자를 대거 지급하고,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지어 시행토록 하였다. 신미에 대한 왕실의 신임과 후원은 예종과 성종 때도 이어졌다.

[묘소]

신미의 승탑은 속리산 법주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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