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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71
한자 朴世豪
영어공식명칭 Park Seho
이칭/별칭 거정(居正),농담(籠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근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10년 - 박세호 생원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28년 - 박세호 문과 급제
추모 시기/일시 1974년 - 박세호 경현단 배향
거주|이주지 한양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정보산 - 경기도 양평군
부임|활동지 영월도호부 - 강원도 영월군
부임|활동지 용담현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사당|배향지 경현단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산70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고령
대표 관직 예조 정랑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경현단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박세호(朴世豪)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자는 거정(居正)이고, 호는 농담(籠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지평을 지낸 박미생(朴美生)이고, 할아버지는 예조 참판으로 추증된 박사란(朴思爛)이다.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부제학 등을 지낸 통정대부 박처륜(朴處倫)이고, 어머니는 군수 최치빈(崔致濱)의 딸이다. 부인은 원계(元桂)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세호는 젊은 시절 문학 동기이기도 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학문을 추종하였다. 1510년(중종 5) 식년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다. 1519년(중종 14)에 조광조 일파가 몰살 당하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다. 그러자 박세호는 생원으로서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약수(李若水), 김수성(金遂性), 윤언직(尹彦直), 홍순복(洪舜福) 등과 함께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의 죄를 사면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 일로 인해 투옥되기도 하였으나, 이내 사면되어 다시 나왔다. 당시 사림들은 그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기묘사화가 있은 뒤에 양근(楊根)[지금의 경기도 양평군]의 정보산(鼎寶山) 속에 종적을 숨겼다. 구름이 둘러 있는 못가의 바위와 폭포의 절경을 사랑하여 스스로 ‘농담(籠潭)’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528년(중종 2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535년(중종 30) 사유(師儒)로 뽑힌 이후에 예조 정랑을 역임하였고, 영월부사(寧越府使), 용담현령(龍潭縣令)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후대에 기묘명현(己卯名賢)[기묘사화 때 화를 입거나 사림들을 지지했던 자들을 높여 부르는 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상훈과 추모]

박세호는 1974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장석마을에 있는 경현단(景賢壇)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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