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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64
한자 南肅寬
영어공식명칭 Nam Sookkwan
이칭/별칭 정숙(正叔),팔탄(八灘)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현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 남숙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35년 - 남숙관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남숙관 영춘현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81년연표보기 - 남숙관 사망
출생지 남숙관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의령
대표 관직|경력 영춘현감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문인.

[가계]

남숙관(南肅寬)[1704~1781]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자는 정숙(正叔)이고, 호는 팔탄(八灘)이다. 할아버지는 남택하(南宅夏)이고, 아버지는 남도진(南道振)이다. 부인은 경주 이씨(慶州 李氏)와 양천 허씨(陽川 許氏)이다.

[활동 사항]

남숙관은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출신으로,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다. 이후 1759년(영조 35)에는 영춘현감(永春縣監)[영춘현은 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으로 부임하였으나, 재직 중에 파직되었다. 파직된 이후 조정에서의 활동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수직(守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관직에 나아가기 전에는 유생 자격으로 1725년(영조 1) 6월에 영의정 이광좌(李光佐)[1674~1740]를 처벌해야 한다는 연명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숙관은 아버지 남도진의 영향을 받아 문장에 능통하였고, 시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김창협(金昌協)[1651~1708)과 김창흡(金昌翕)[1653~1722], 김창협의 제자인 이병연(李秉淵)[1671~1751]으로 이어지는 백악 시단의 맥을 이었다. 남숙관은 1만 수 이상의 시를 지었다고 하나, 대부분의 자료는 가난함과 자식들의 요절로 인해 전해지지 못하였다. 생전에 간행된 문집은 없으며, 『팔탄공유고(八灘公遺稿)』만이 가문에 소장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알려진 남숙관의 작품으로는 「송춘사(送春詞)」, 「조화사(調花詞)」, 「석별행(惜別行)」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역 시조 40수가 발견되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숙관의 시문은 일상을 주로 다루되 삶의 고난과 근심을 벗어던진 탈속적인 경향이 강하며, 기운이 순하고 소리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 많다고 한다. 시문 이외에도 남숙관은 1779년(정조 3)에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청풍향교의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를 작성하였다.

이외에 이병연이 죽은 뒤 남숙관이 1만 3,000여 수에 달하는 이병연의 시를 절반 가량 추려 선본(選本)을 만들기도 하였다. 정조 대 문인인 홍낙순(洪樂純)[1723~?]이 『사천시초(槎川詩抄)』를 엮을 때 남숙관의 선본을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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