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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61
한자 南老星
영어공식명칭 Nam Noseong
이칭/별칭 명서(明瑞),운곡(雲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근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3년연표보기 - 남노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1년 - 남노성 별시 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34년 - 남노성 검열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47년 - 남노성 동부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1년 - 남노성 이조 참의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남노성 함경도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61년 - 남노성 동지의금부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67년연표보기 - 남노성 사망
부임|활동지 함경도 - 함경도
부임|활동지 개성부 - 황해북도 개성시
묘소|단소 남노성 묘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지도보기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의령
대표 관직 동지의금부사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남노성(南老星)[1603~1667]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자는 명서(明瑞)이고, 호는 운곡(雲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언경(南彦經), 할아버지는 남격(南格), 아버지는 남호학(南好學)이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인데, 한 명은 한의(韓嶷)의 딸이고, 다른 한 명은 이안인(李安訒)의 딸이다.

[활동 사항]

남노성은 1624년(인조 2) 증광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631년에는 황감제(黃柑製)에서 3위를 하고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4년(인조 12)에 검열(檢閱)로 제수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636년(인조 14) 정언(正言)으로 제수 받은 뒤,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 지평(持平), 홍문관 수찬(修撰) 등을 지냈다. 1639년(인조 17)과 1640년(인조 18)에는 암행어사로 활동하였으며, 이조 좌랑, 이조 정랑 등도 역임하였다.

1641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봉림대군(鳳林大君)[훗날의 효종]을 모시고 환국한 뒤, 응교(應敎), 헌납(獻納),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1647년(인조 25)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임명된 이후 대사간, 승지, 이조 참의 등을 거쳤고, 1657년(효종 8)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1660년(현종 1)에는 개성유수와 도승지를 지내고 총관·제조를 겸임하였다. 이후 병조 참판과 호조 참판을 거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1654년(효종 5)과 1659년(현종 즉위년)에는 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으로 해학을 즐기고 익살을 잘 부렸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남노성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문하에 있었으며,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 등과 교유를 가졌다.

[묘소]

남노성의 묘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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